헬렌 켈러가 정말 보여주고 싶었던 건 ‘기적’보다는 ‘비전’
마크 트웨인은 이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19세기에 가장 위대한 두 명의 인물은 나폴레옹과 _______다. 나폴레옹은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하려다 실패했다. ________는 세계를 마음의 힘으로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윈스턴 처칠은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여성”이라고도 했습니다.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저술가이자 사회운동가인 헬렌 켈러입니다. 헬렌 켈러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혹시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극복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는 건 아닌가요?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만나다』에는 신념으로 세상을 바꾼 오리진 ‘헬런 켈러’에 대한 다른 면모도 볼 수 있습니다. 소개해드립니다. <웹 주>
헬렌 켈러가 정말 보여주고 싶었던 건 ‘기적’보다는 ‘비전’
세상은 헬렌 켈러를 혹독하게 검증했다. 잠재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내용을 『서리 왕The Frost King』이라는 동화로 발표하는 바람에 표절 시비가 붙었다. 적대적인 사람들은 그를 ‘살아 있는 거짓말’이라고 불렀다. 켈러가 애초에 장애인이 아니라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펴는 사람들까지 나왔다.
회의론자들은 설리번이 켈러의 글을 검열했을 뿐만 아니라 창작에도 깊숙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독창성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들에게 켈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관찰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상상한다.”
대중에게 켈러는 ‘천사’였다. 천사 이미지로 감춰지다시피 한 것이 두 가지 있다. 켈러가 사회운동가였다는 것과 여느 여성처럼 남성의 사랑을 갈구했다는 것이다. 헬렌 켈러는 여성 참정권, 피임에 찬성하고 파시즘, 전쟁, 인종 차별, 불평등, 가난에 반대한 사회운동가였다. 켈러는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비판하기도 했다. 작품에 남부 노예제의 실상이 잘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헬렌 켈러는 사회주의자였다. 독서를 통해 사회주의자가 됐고, 1909년 사회당에 가입했다. 독일어 점자로 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물을 읽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헬렌 켈러의 활동을 ‘사찰’했다. 켈러는 1917년 러시아 혁명에 열광했으며 미국 사회주의 운동이 점진주의와 혁명주의 진영으로 분열하자 혁명주의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켈러는 미국의 민주주의도 믿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민주주의는 이름뿐이다. 우리가 투표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사실상 두 편으로 나뉜 독재자들 중에서 한편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1921년 이후에는 켈러의 사회주의 활동이 대폭 감소했다. 장애인들을 위한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헬렌 켈러의 모습은 상당히 관능적이었다. 1920년경 유리 안구를 이식했다. 사람들은 그의 파란 눈에 매혹됐다. 켈러는 자신의 성욕을 감추지 않았다. “젊은 남자들의 냄새에는 불, 폭풍, 바다와 마찬가지로 뭔가 본질적인 것이 있다.” 켈러는 “볼 수 있다면 우선 결혼하고 싶다.”는 말도 남겼다.
-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만나다』 중 발췌 재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