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마음을 탁 틔워주는 소울 푸드 ‘홍어’ 이야기
누구에게나 소울 푸드가 있습니다. 때로는 어머니가 해주신 따뜻한 밥 한 그릇일 수도 있고, 때로는 고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요리일 수도 있습니다. 남도가 고향이 아닌 사람에게도 잘 알려진 목포의 대표적인 음식은 ‘홍어’를 중년의 고단함을 씻어내는 소울 푸드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 PD의 미식기행, 목포』저자가 그렇습니다.
사실 홍어만큼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음식이 또 있을까요. 삭힌 홍어 특유의 ‘입천장이 벗겨질 만큼 화~ 하게’ 쏘는 맛 때문에 어떤 이에게는 그리운 음식으로, 또 어떤 이에게는 ‘무모한 도전’이 되기도 합니다.
『세 PD의 미식기행, 목포』저자 홍경수는 전남 함평이 고향임에도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홍어를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했답니다.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온몸으로 절절히 느낄 때마다’ 홍어가 그리워졌다니, 홍어는 중년의 고단함을 씻어내는 소울푸드인 것일까요.
『세 PD의 미식기행, 목포』에서는 홍어에 관한 감칠맛 나는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여기서는 음식 그 자체보다 홍어에 얽힌 흥미있는 이야기 중심으로 그야말로 그 ‘맛’만 보여드립니다. <편집자 주>
마음 뚫어주는 소울 푸드 ‘홍어’
왜구의 침입이 가져다 준 홍어 삭힌 맛
(홍어를) 삭혀 먹게 된 데에는 역사가 숨어 있다.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왜구가 남해안에서 출몰하여 노략질을 일삼을 때, 조정은 섬에 있는 주민들을 육지로 피신시키는 공도 정책을 펼쳤다. 국가가 보호해줄 수 없으니, 아예 생활 터전을 옮기라는 것이었다. 흑산도 옆 영산도 사람들은 배를 타고 육지로 들어왔는데, 이들이 정착한 곳이 고향 영산도의 이름을 딴 영산포다.
시간이 흘러 이들 중 일부는 고향 영산도로 돌아갔고, 영산포에 남은 사람들은 틈틈이 고향에 들렀는데 다녀오는 길에 선물로 가져온 생선들이 더운 날씨에 거의 대부분 상해버렸다. 하지만 홍어만은 먹어도 탈이 나지 않았다. 이것이 홍어를 삭혀서 먹기 시작한 연유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흑산도에 귀양 온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도 홍어 이야기가 나온다.
회, 구이, 국, 포에 모두 적합하다. 나주(지금의 목포도 나주에 속했다)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즐겨 삭힌 홍어를 먹는데 지방에 따라 기호가 다르다. 배에 복결병(腹結病)이 있는 사람은 삭힌 홍어로 국을 끓여 먹으면 더러운 것이 제거된다. 이 국은 주기(酒氣)를 없애주는 데 매우 효과가 있다. 또 뱀은 홍어를 기피하기 때문에 비린 물을 버린 곳에는 뱀이 가까이 오지 않는다. 뱀에 물린 데엔 홍어껍질을 붙이면 잘 낫는다.
홍어가 실학에도 영향을 미치다?
조선 시대에 홍어와 관련된 재미있는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홍어장수 문순득의 표류 이야기다. 문순득은 1801년 12월 신안 우이도에서 흑산도로 홍어를 사러 갔다가 풍랑을 만나 유구(일본 오키나와)로 표류, 그곳에서 8개월을 생활한 후 돌아오다 또다시 풍랑을 만나 필리핀, 마카오, 중국을 거쳐 3년 2개월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1805년 1월 8일 우이도로 귀향하기까지 약 3년 2개월이 소요됐다. 문순득은 우리 역사상 가장 먼 거리를 가장 오랫동안 표류한 인물이다. 그가 살아서 고향 우이도에 돌아와 표류 경험을 정약전에게 들려주었다. 정약전은 그 경험담을 정리해 『표해시말(漂海始末)』을 집필했다. 이 책에는 문순득이 경험한 210년 전 동아시아 각국의 풍속과 사회상, 언어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들어 있다. 문순득의 표류 경험은 우이도를 벗어나 육지에 있는 당대의 학자들에게도 전파됐다. 정약용은 『경세유표(經世遺表)』에서 문순득이 마카오에서 경험한 것을 근거로 조선의 화폐 개혁을 주장했다. 정약용의 제자 이강회는 문순득의 증언을 바탕으로 유럽형 범선과 조선의 배를 비교분석한『운곡선설(雲谷船說)』을 집필했다. 홍어에서 비롯된 사건이 조선 시대 실학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다. 그리고 우이도에 귀양 온 정약전이『자산어보』나 『표해시록』등 다양한 방면으로 해양문명사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만 하다.
지독한 냄새 2위 홍어
홍어는 가까운 일본에도 알려져 있다. 2012년 2월 일본의 여행정보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 재팬’이 세계의 지독한 냄새 음식 지도를 공개했다. 1위는 스웨덴의 청어절임 수르스트뢰밍(Surstroemming). 독한 냄새 측정 기준인 앨러배스터(Au) 8070에 육박한다. 스웨덴 북부지방 의 발효식품인 수르스트뢰밍은‘나는 새도 떨어질 정도의 냄새’로 명성이 자자하다. 소금에 절인 청어를 통조림으로 만든 것인데 일반 통조림과 달리 살균을 하지 않아 통조림 내부에서 발효가 진행되어 개봉시 발효취가 터져 나오듯이 분사된다고 한다. 2위는 바로 우리나라 홍어로 앨러배스터 6230을 기록했다. 앨러배스터 수치에서 알 수 있듯이 홍어는 청어절임과 어깨를 겨누며 지독한 냄새 나는 음식의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데, 얼마 전 방송된 다큐멘터리 <슈퍼 피쉬>에서 볼 수 있듯이 수르스트뢰밍은 스웨덴 사람들의 소울 푸드로, 세계적인 잡화 및 가구 양판점인 이케아에서도 판매하고 있다. 홍어 역시 지독한 냄새가 나지만 홍어 마니아에게는 답답한 속을 풀어주는 소울 푸드다.
- 『세 PD의 미식기행, 목포』 ‘마음 뚫어주는 소울 푸드 홍어’ (홍경수) 중 발췌 재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