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코치’와 ‘네트워킹’의 맨얼굴
‘커리어코치’와 ‘네트워킹’의 맨얼굴
경기가 어려워지고 실업이 증가하면 어떤 산업이 활발해질까요? 우선 자영업자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퇴직한 화이트칼라들이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쉽게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쉬운 시작이 쉬운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어서 그동안 모은 저금과 퇴직금을 다 날리는 눈물겨운 사례도 참 많이 접합니다.
그래서 일단 정리해고나 구조조정 등으로 피치 못하게 직장을 떠난 많은 화이트칼라는 ‘재취업’ ‘구직’을 희망합니다.
‘이번에 입사할 회사가 마지막 회사’이기를 바라면서요. 이처럼 구직 중인 화이트칼라를 소비자로 하는 사업이 바로 ‘커리어코치(career coach)’입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화이트칼라 구직 현장에 뛰어들어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을 생생하게 써낸 『희망의 배신』에 의하면
미국에는 화이트칼라 실업에 대응해 3년마다 그 수가 배로 늘어나면서 1990년대 중반부터 성장하고 있는‘이직 산업(transitionindustry)’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터넷에는 잠재적 고용주가 봐 주기를 기다리며 이력서를 게시해 두는 구직 사이트가 엄청나게 다양하며, 아니면 기업 사이트에서 직접 지원할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이력서를 보내는 것만으로 상대의 눈길을 끌 수 있을까요? 하다못해 눈길을 끄는 이력서를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이제 구직은 아주 복잡한 기술이 되어 구직자 혼자서 습득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으니까 말이죠.
커리어코치는 이런 구직자를 대상으로 ‘코치’를 합니다. 구직자의 진정한 직업적 ‘열정’을 찾아내고, 이력서를 다듬어 주고, 구직에 성공하기까지 모든 단계마다 옆에서 손을 내밀어 도와준다는 거죠. 직장의 위치나 면접 장소는 상관치 않고 그리 높지 않은 보수와 의료보험 제공이라는 기준에만 맞는다면 가장 먼저 일자리를 제안한 곳에서 일하기로 정한 ‘겸손하고 소박한 소망’을 가진 구직자 바버라 에런라이크 또한 커리어코치의 도움을 받습니다. 커리어코치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네트워킹’ 행사에도 열심이었습니다. 구직자가 어떤 코치를 만날지는 제비뽑기와 비슷하다는 바버라 에런라이크, 제비뽑기를 잘못한 걸까요? 『희망의 배신』에서 그 경험을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해 온 구직 활동에서는 창문 없는 방에 앉아 있는 일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누군가(대개 50대나 60대의 백인 남성이) 앞에 서서 간증하고, 설교하고, 훈계를 늘어놓고, 코칭을 하는 동안 말이다. 그러고 보면 프레젠테이션의 내용이 아니라 몇 시간씩 꼼짝 않고 앉아서 집중한 듯한 얼빠진 표정을 유지하는 게 핵심인지도 몰랐다.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몸을 써서 일하다 부상을 입고 녹초가 되지만,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은 꼼짝 않고 앉아 있다가 똑같이 고통스러운 결과를 맞는다. 어찌 보면 화이트칼라가 되기 위한 보편적 필수 요건인 대학 교육의 요체는 가만히 앉아서 눈을 뜨고 있는 훈련인지도 모른다. 차라리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루가 끝날 무렵이 되면 방에 틀어박혀 속에 맥주를 들이 붓고 쓰러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노동의 배신(Nickel and Dimed)』을 쓰기 위해 전국 체인망을 가진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근무했고, 청소부로 일했고, 월마트에서 물건을 날랐던 (그것도 꽤 오랫동안) 그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말입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여러 가지 구직 활동 중에서도 ‘네트워킹’을 가장 힘들어 했습니다. 흔히 우리가 인맥 쌓기라고 하는 것이죠.그는 『희망의 배신』을 통해 네트워킹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사회성을 이면의 목적에 맞춰 굴절시키므로‘사기’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정말로 낯선 존재일 것으로 기대하고 그 사람이 가진 겹겹의 미스터리에 매력을 느끼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네트워킹에서는 매춘과 마찬가지로 매혹될 시간이 없다. 네트워킹 작업을 꾀하는 사람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더 귀중한 정보나 만남을 찾아 상대의 어깨 너머로 계속시선을 돌린다. 이런 도구주의는 집단적 정체성, 곧 기업의 격변에 희생된 화이트칼라들이 동질감을 형성할 토대를 갉아먹는다. 주위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어울리지 않고 네트워킹을 염두에 두고 개인적 필요를 충족할 기회를 엿보면서 혼자서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자 어떤가요? 지금 구직 중인 30~40대 화이트칼라 뿐 아니라 사회에 첫발을 디디려고 애쓰는 대학 졸업(예정)자가 겪는 어려움과도 참 비슷하지 않나요?